공교롭게도 또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난 사실 캐롤을 좋아한다. 굳이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알아서 잘 찾아 듣는 편이다. 캐롤이란 건 사실 어떤 목적성을 띈 음악이지만 나에게는 사실 그렇지 않다. 새해에도 듣고 여름에도 듣고 가을에도 듣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그 다음날에도 듣고 뭐 그런다. 아무튼 어쨌거나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웃기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캐롤을 듣지 않고 다른 음악을 듣고 있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다. 쓸데없는 인터넷의 인스턴트식 기사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선을 보면 사랑이 이뤄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며 혹은 이번 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며 같은, 정말 크리스마스를 설레게 할 방법을 찾는듯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더이상 낭만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유독 크리스마스에는 낭만을 찾는 듯 하다. 1년의 모든 낭만을 이때에 푸는 걸까 싶기도 하고...
뭐 어쨋든 제목은 크리스마스의 저주다. 되게 거창해보인다. 앞으로 써내려갈 이야기는 다분히 나의 경험담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실 저주라고 할만큼 나쁜 건 아니지만, 굳이 제목을 붙이다보니 어떤 단어의 익숙함이 좋겠다 싶어서 저주라는 단어를 넣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니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난. 27년을 살아오는 동안 크리스마스에는 '커플'이었던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 크리스마스말이다. 친구들과 보낸 기억, 술 마신 기억, 혼자 보낸 기억, 만화영화 본 기억. 이런 기억 밖에 없다.
이젠 몇 년전인지도 기억 나지 않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점심 때, 그 당시의 애인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아마 난 근사한 크리스마스 계획은 없었지만, 나름의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하고 데이트도 생각해뒀을 것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난 꽤 그런 방면에 있어서는 특유의 센스를 보여주는 기질이 있긴 있으니 말이다. 흠... 아마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나 스스로가 그 당시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일런지도 모른다. 혹은 적확하게 그 당시의 공기며 바람의 세기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글을 쓰면서 쓰기 싫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단정짓고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그런 그런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그런 그런 나름의 크리스마스 계획도 세워뒀-을 것이-다. 그 당시 애인의 취향에 맞춰, 조용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들과 쓸데없는 예술사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말했다. "헤어져." 난 '썅...'... 그렇다. 난 이유도 모른채 차여야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들떠있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로맨스를 즐기고 있는 게 그대로 보이는 창문을 옆에 두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무사히 넘겼다. 그래. 드디어 나에게도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애인이 생겼구나!를 외쳤다. 아니,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일을 하는 그녀기에 볼 수 없었지만 뭐 상관있을려나,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할 수 있을텐데. 그래. 예전의 기억은 잊자. 앞으로만을 생각하면 돼. 내 인생의 한페이지를 그을 수 있을 거야. 드디어 크리스마스를 커플로서 로맨스를 즐길 수 있게 된 거야.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각에 맞춰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는다. 뭐, 데이트 준비한다고 여념이 없나보다. 뭐, 원래 전화를 잘 하지도 잘 받지도 않았으니. 이런 쿵짝이 잘 맞으니 우리가 커플이 아닐까! 난 먼저 우리가 만나기로 한 분수대에 나가서 그녀를 기다렸다. 날씨가 춥고 입김이 나오지만 그리 춥지는 않다. 그녀에게 건네줄 선물도 준비했다.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그녀를 기다렸다. 담배를 하나 폈고 하늘을 쳐다봤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하늘. 내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건가! 오전 11시. 나오질 않는다. 전화를 했으나 받질 않는다. 오후 12시. 나오질 않는다. 전화를 했으나 받질 않는다. 오후 1시. 나오질 않는다. 전화를 했으나 받질 않는다. 오후 2시. 역시나... 역시나... 오후 3시. ...... 훗날 알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모두 나 말고 다른 남자와 보냈다는 후문이 전해졌고, 그녀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고 있다. '나 먼저 도착할 거 같은데, 어디에 들어 가 있을까? 그냥 분수대에서 기다릴까?'
성인이 되고 처음 맞이하게 된 크리스마스 이브 날, 아쉽지만 난 솔로. 그렇지만 내가 매우 좋아하는 여자얘가 있었다. 귀여운데다 조금 까칠하게 구는 게 매력이었던 어떤 여자얘였다. 아무튼 성인 되고 처음 맞이하게 된 크리스마스 이브, 친구녀석과 사귀던 여자친구가 일하는 술집을 빌렸다. 아니, 빌렸다기보다는 그 술집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워낙 외진 동네의 술집이었던데다 간판도 전기세 아낀다고 켜질 않았으니. 그리고 나의 친구무리들과 내가 매우 좋아하는 여자얘와 그 외의 잡다한 여자얘들이 모였다. 우리는 의도치않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녀석들도 모두 나와 그녀를 이어주려 다분히 노력중이었다. 그렇지만 까칠하게 튕기는 그녀였으나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괜찮아질 법도 했다. 허나, 평소 노는 데 잘 끼지 않던 친구 녀석이 뒤늦게 도착했다. 매우 잘 생기고 꽤나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친구였다. 맙소사...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그 잘 생긴 친구에게서 눈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둘은 서로 가까이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그 친구는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그랬었기에 괘씸하다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그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크리스마스로 바뀌던 추운 겨울 밤, 어둑한 술집 옆 골목에서 끝없는 싸움을 했다. 인생의 재미란 이런 거일까, 그 친구녀석과 그녀는 아직까지도 잘 사귀고 있으며, 아마-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결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나에게 때놓을 수 없는 가장 친한 친구다. 더 재미있는 건, 그 곳에 왔었던 잡다한 여자얘들 중 두명은 훗날, 나와 약간 심각할 법한 썸씽이 있었다. 그것도 한명은 다른 친구녀석이 자신의 여자친구라며 데리고 왔던 여자얘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잠깐 어울렸던 무리들 속에서 몰래 사귀던 여자얘가 있었다. 들키면 꽤나 민망한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서 숨기고 숨겼다.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튼 그런 그녀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였다. 어느 지하의 작은 바였다. 우리들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시끌벅적한 그런 파티 있지 않나. 환상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소리를 질렀고 환호를 했고 시끄럽게 웃어댔다. 남몰래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은 아마 아주 짜릿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술이 조금 취했을 무렵,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하의 바를 나와 모두 문 닫아 조용하고 어두컴컴한 빌딩의 계단을 올라갔다. 어떤 단호한 목적 없이는 절대 아무도 올라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그런 조용하고 어두운 빌딩의 계단. 우린 꽤나 급하게(?) 사랑의 짜릿함을 나눴다.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고 사랑. 난 이제 크리스마스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를 속으로 외치며 환호를 했다. 우린 그렇게 급하게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살금살금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데 빌딩 입구에 보이는 낯익은 뒷모습. 우리 무리 중 한명이었는데. 돌아보며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로 뛰어가더니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추근덕댔다며 이야기를 한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썅... 난 세컨이었다. 내가 그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전부터, 둘은 몰래 사귀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얼토당토 않는-내가 추근덕댔다는- 거짓말과 동시에 그 남자의 주먹은 곧바로 나의 턱으로 날아왔다. 지하의 바로 가 가방을 메고 곧바로 그 바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찬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두어캔 마셨고 하하하! 웃었고 편의점으로 들어가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그 무리와 다시는 어울리지 않는 게 좋구나- 싶었다.
크리스마스다. 역시나 난 혼자고. 역시나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당연히 올해에 겪은, 아니 내 인생의 가장 최근의 사랑 또한, 어떤 저주에 의해 역시나 크리스마스까지도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마, 이 크리스마스의 저주는 절대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뭐, 상관없으려나. 나름 27년동안의 크리스마스만은 절대 솔로였던 나는 이젠 무덤덤하다. 나름 기독교라 교회라도 나가볼까 싶지만 더이상 어떤 종교에 대해선 생각을 멈추기로 한 시점부터는 사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데 나가서 뭐할까 싶다. 사람 많고 북적대는 곳에는 더이상 당연히 가기 싫고. 그냥 동네나 어슬렁거리며 바람이나 쐬던가 해야지. 눈이라도 오면 좋겠다. 그럼 눈사람도 만들고 하면 되니깐. 지금 든 생각이지만, 크리스마스라고 들뜨거나 설레거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행복한 크리스마스만을 보낸건가- 싶다. 썸머타임이 흘러나온다. 호주에 가고 싶다.